2014년 3월, 당시 일본 유신회 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터무니 없는 발언을 했다.
"일본에는 무사도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 군인은 훌륭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종군위안부 같은 일로
우리 선조가 모욕당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무사도가 있었기에 일본 군인이 "훌륭하게" 싸웠다는 그의 주장대로 무사도는 과연 훌륭한 사상일까? 그런 훌륭한 사상이 오래전부터 뿌리 깊었다면 일본은 어째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또 전혀 반성하지도 않을까?
무사도. 그걸 진짜라고 믿는다면 순진하다. 무사도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실체가 아니다. 신화나 상징 조작에 가깝다. 1899년 이전에 무사도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에도 시대 거의 유일하게 무사도라는 단어를 찾을수 있는 저작물은 일본의 변방인 규슈섬 사가 지역의 고급 사족인 야마모토 쓰네토모(1659∼1719)가 먼저 죽은 번주(藩主)와의 대화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남긴 하가쿠레(葉隱)다. 이 책은, 에도시대에 널리 읽히지 않았으며 근대에 와서야 빛을 보게 된다. 자세한 내용을 보면, 유교나 불교에서 따낸 자비, 성(誠), 간언(諫言), 예의, 군인의 순사(殉死)등에 대한 설파로 가득 차 있다. 불명예를 씻기 위한 죽음에 대한 강조의 정도는 조금 달라도,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당시 조선이나 중국대륙등, 동양 어디의 나라라도 보편적으로 공유하던 가치관이었다. 오히려 조선의 선비야 말로 이러한 정신의 구현자에 가까울 것이다.
이러한 무사도를 처음 체계화한 이는 일본의 농학자이자 교육자인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1862~1933)다. 미국과 독일에서 수학했고, 미국 여성과 결혼했으며,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지낸 일본 근대의 국제적 지식인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그의 초상은 5000엔짜리 지폐에 사용됐다. 그가 1899년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한 책이 "BUSHIDO:The Soul of Japan"이다.
서문엔 집필 동기가 간단히 나온다. 그는 "종교교육을 하지 않는 일본에선 도덕을 어떻게 가르치는가"라는 벨기에 학자의 질문에 답이 궁해진 적이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그는 일본의 무사도 정신이야말로 일본인의 도덕규범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에도 제대로 된 도덕과 윤리 체계가 있다, 서양에 기사도가 있듯이 일본엔 무사도가 있다... 그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책을 썼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서양의 기사도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참고로 어릴 때 어렴풋이 듣던 유교적 덕목이나 사무라이 전설들을 버무려 만든 것이었다. 니토베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는 얘기다. 무사도라는 게 정말 일본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면, 왜 하필 사무라이의 시대가 끝난 뒤에야, 그것도 서양 생활을 한 청년의 손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먼저 쓰였겠는가.
에도시대(1603∼1868) 일본에서도 사무라이 계층은 총 인구의 5%에 불과했다. 그들의 문화에 나머지 95%의 인구가 영향을 받았느냐 하면 그것도 결코 아니었다. 사무라이들과 달리 나머지 95%의 주민들은 칼을 차고 검술을 배울 권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오자마자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인은 모두 무사도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서양인도 많았다. 그리고 서양에서 유명해진 이후에 일본어로도 번역됐다. 무사도가 일본에 역수입된 게 바로 그때였다. 그 뒤 무사도는 일본인의 의식 속에 마치 일본인 고유의 도덕규범이나 미덕으로 각인됐다. 때마침 불어 닥친 군국주의 바람도 집단최면을 걸었다.
지금도 무사도는 일본인의 의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일본의 보수 우익층이 중시한다. 국격을 높이자, 국민의식을 고양시키자, 하는 논의에서 꼭 나오는 게 무사도의 함양이다. 굴절된 자아도취다.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할 때 방위청 간부가 "무사도 나라의 기개를 보여주라"고 훈시한 적도 있다. 코믹하다.
니토베는 자신의 책에서 '용맹과감한 페어플레이 정신'으로서 '의(義)'를 무사도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무사도를 숭상하던 일본 군국주의의 만행을 보면 무사도가 허구였다는 게 잘 드러난다. 지금 일본의 보수 정권도 마찬가지다.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 인색한 그들에게 도대체 무사도의 풍모를 찾을 수 있는가? 원래 없었던 것이니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미국에서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는 태도를 표방하고 귀국해서는 얼굴을 바꾸어 반대의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있다. 그들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자학적 역사관'으로 매도한다. 무사도를 숭앙하는 우익 세력일수록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침략을 반성하기보다 패전을 반성한다. 결국, 날조된 정신론으로는 사람을 감화할 수 없는 것이다.